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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님 | 서울예대 교수, 아동・청소년 문학 평론가




김지은 “양육 경험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세요”

 

실내, 의류, 사람, 벽이(가) 표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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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을 읽고 평론을 하는 김지은 작가는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학생들과 그림책, 아동청소년문학을 연구한다. 평론집 『거짓말하는 어른』, 『어린이, 세 번째 사람』,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공저) 등을 썼고 그래픽노블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너와 나의 빨강』, 그림책 『괜찮을 거야』,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대한민국에서 그림책, 동화, 청소년소설을 가장 많이 읽고 사랑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김지은 평론가가 아닐까? 그에게 어린이책의 변화와 양육 경험을 물었다. 

 

 

 

 

책으로만 만날 수 있는 것들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계시죠? 대부분 작가, 문학평론가라고 많이 소개하는데 작가님은 꼭 ‘아동청소년’이라는 단어를 붙이시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아동문학에 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어린이와 어른이 보는 책 사이에 또 다른 책의 영역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동화작가라는 이름 대신 아동문학가라는 말을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이게 사실 부정확한 용어들이잖아요. 문학가라는 단어를 쓰는 건 아동문학가밖에 없었고요.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규정으로 가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해요. 

 

그림책도 무조건 동화책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죠. 아이가 어릴 때 가장 많이 사게 되는 책이 그림책인데요. 요즘은 성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많이 나오고 소재도 다양해졌습니다. 청소년소설도 마찬가지고요.

 

맞아요. 예전에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주로 읽는 책은 착한 아이, 나쁜 아이 같이 단정짓는 캐릭터가 많았지만 요즘은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입체적인 인물이 많이 나오죠. 작품을 읽어나갈수록 이 사람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주아동이 책에 등장한다고 할 때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아동이 언제 어디에서 왜 이주를 선택하게 됐는지가 맨 먼저 등장했어요. 그런데 요즘 작품은 아니죠. 책의 70% 정도가 지날 즈음에서야 이 친구가 이주 아동이었던 것이 묘사됩니다. 과거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보면 어린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짜장면, 피자, 떡볶이 이런 메뉴가 나왔다면 요즘은 어린이들의 다양한 미식 취향을 고려해서 간식도 입체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됩니다. 가족관계도 그렇고요. 요즘 아동청소년 문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은 비혼인 이모, 삼촌입니다. 

 

반면에 이웃 이야기들은 많이 사라졌죠.

 

옆집 사람이 책에 등장하면 어린이들이 긴장해요. 낯서니까요. 예전에는 엘리베이터나 골목에서 이웃이 말을 걸면 친근한 장면으로 여겼는데, 지금은 약간 경계의 인물로 등장할 때가 더 많아요. 

 

사회적인 변화를 비롯해 작품을 쓰는 작가들의 감수성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맞아요. 작가들도 고민을 정말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달라졌죠. 요즘 나오는 작품들을 보면 아이들의 발언에 무게가 많이 실려요. 어른들의 말에 그냥 수긍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안 나오죠. 우리 학교가 왜 싫은지, 교사에게 무엇이 불만인지, 어떤 제도가 불편한지, 어린이들의 구체적인 발언들이 작품 속에 등장합니다. 단순히 경청만 했던 어린이에서 벗어나 시스템을 바꿔가는 매우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서사로 담아요. 

 

청소년소설과 성인문학을 동시에 쓰는 작가들도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독자가 사라지고 있는 거죠. 영유아기에는 그림책을 많이 읽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아이들이 학습만화만 봅니다. 고학년이 되면 문제집 사기에만 바쁘고요.  

 

정확히 말하면 문학 교육이 사라졌죠. 책을 통해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배워요. 자신이 갖고 있는 세계 말고 다른 사람의 스토리를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책인데,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죠. 사람이 학습을 할 때 대응적으로 진리를 배우기도 하지만, 문맥적으로 배우는 게 훨씬 많거든요. 어떤 맥락을 통해 학습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아이들의 독서에 공백이 너무 크죠. 

 

책을 읽을 때도 효율성을 따지죠. 

 

얼마 전 한 지역의 육아종합센터에서 강의를 했는데, 학부모들이 많이 오셨어요. 그분들의 주요한 관심은 ‘학습 경로로써의 독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어요. 옛이야기 다음엔 과학, 역사서를 읽으면 되냐는 질문이 대부분이었어요. 사실 학습을 목적으로 한다면 독서보다 빠른 게 훨씬 많죠. 문제는 인간은 나무와 똑같아서 절대치의 필수적인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죠.

 

인간의 얼굴, 벽, 의류, 사람이(가) 표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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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속도를 이해해야 한다

 

작가님이 영유아기 자녀를 키웠던 건 10여년 전이시죠. 그때와 지금은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느껴지나요?

 

글쎄요. 여전한 것도 있고 또 달라진 것도 많은데요. 요즘 어린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들을 보면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이건 사회적인 분위기, 문화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기의 탄생을 사회가 기뻐하고 어린이의 존재를 반가워해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양육자들이 자신을 과하게 검열하고 또 스스로가 좋은 양육자가 되지 못하는 상태를 항상 걱정하는 것 같아요. 이 분위기가 노키즈존으로 연결되고요. 

 

내 아이가 작은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중압감이 매우 크죠. 

 

사실 우리 모두가 어린이였던 시절이 있잖아요. 누구나 잊어버리고 살지만 이 시절을 조금만 기억하려고 노력하면, 그때의 내가 얼마나 서툴고 문젯거리를 일으키며 자랐는지를 알 수 있어요. 요즘 사회는 모든 게 효율을 중심으로 구성되니, 일반 성인이 갖고 있는 규정 속도, 또 그런 범위의 활동에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지나치게 적대시해요. 필요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어린이는 원래 기본 속도가 달라요. 그런데 이 속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니 결국 충돌하게 되는 거예요. 내 어린 시절을 우리도 떠올려봐야죠. 

 

양육자의 성장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어요.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이 체력적으로는 많이 힘들지만, 스스로 성장의 기회도 되잖아요. 

 

그럼요. 양육자들은 양육 경험을 통해 관계적인 능력이 엄청나게 커집니다. 양육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관계의 질이 있어요. 새로운 일을 하게 될 때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생기죠. 우리 사회가 지금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출생률인데요. 출생률을 높이려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과 이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죠. 그리고 이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미래 사회에는 더 많이 필요해요.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예요. 육아휴직제도를 사용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데 아직도 이 제도를 사용하면 불이익을 주는 조직이 존재하죠. 휴직을 하다 재취업에 성공하면 쉰 기간을 공백기라고 부르는데, 이 언어적인 표현도 저는 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양육 경험자’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마음 같아서는 5년 양육 경험을 가졌으면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만약에 두 명을 길렀다고 하면 추가 가산점을 주는 거죠. 예전에 스웨덴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 곳에서는 아이 때문에 일을 하다가 갑자기 나가야 할 때, 그 이유를 묻지 않아요. 이유를 묻지 않는 건 기본이고, 결재도 받지 않고 나가도 돼요. 왜냐면 긴급 상황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거죠. 학교도 마찬가지예요. 수업을 하다가 자녀에 관련된 긴급한 상황이 터지면 그 수업이 종료되기 전에 그냥 나가도 돼요. 이런 비상사태에 대한 계획이 이미 다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네요. 

 

우리는 언제나 눈치를 보죠. 구구절절 다 설명해야 하고요. 양육과 노동을 병행하는 구조가 당연히 여겨져야 하는데 아직 멀었죠. 여전히 돌봄 노동은 남는 인력이 한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가장 무서운 건 내 시간을 겨우 만들어서 양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는데, 또 다른 돌봄이 따라온다는 거죠. 너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보게 됐으니 할머니 간병도 맡고, 집안일도 더 많이 하라는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요?

 

여전한 편견 속에서 돌봄을 이어가는 양육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사회가 주는 공포 마케팅에 마음을 뺏기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양육자들에게 여러 종류의 협박, 공포를 조성하는 걸 많이 목격하는데요. 양육자로서 사회에 요구할 것들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기죽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다 잊어버린 빈터에서도 풀이 자라는 것처럼 아이들은 되게 자생적으로 잘 자라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겁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양육자가 자녀에게 좀 더 잘하지 못해서 큰일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큰일이 나면 사회가 이상한 거니까요. 어린이를 키우는 일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어린이가 있어야 미래가 있는데, 그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가장 앞장서 있는 분들이 양육자이시니까요.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아주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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